한국사 퀴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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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79년 당나라에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었던 ‘이 사람’은 <토황소격문>을 써서 황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람’은 885년 신라에 돌아와 한림학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당시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며 외직(外職)을 자청했다. 하여 여러 곳의 태수를 지냈고, 이때 ‘계림황엽, 혹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계림(서라벌)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이요, 혹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신라 멸망과 고려 흥성을 예언한 것이다. 훗날 고려 현종은 이를 감사하게 여겨 ‘이 사람’에게 문창후(文昌候)라는 작위를 추서하였다. 위 내용에 해당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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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난이도 | 글쓴이 | ||||
일제가 1906년 설치한 식민지 통치관할기관은?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고려 사회상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기출 | 고려사 | 고급 | 객관식 | |||
조선시대 통신 수단 중에서 가장 빨랐던 것은? *기출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고대에 만든 한국 고유 현악기는?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자료와 관련 있는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1927년 라디오 방송을 듣기 위해 대문에 붙였던 서류는?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관음신앙을 전파하고, 화엄종 시조가 된 승려는? | 고려사 | 중급 | 객관식 | |||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바르게 설명한 것은?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개화기 언론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언문일치체 완성과 관계있는 문예 동인지는?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고려 교육제도에 관한 사항이 시대순으로 바르게 배열된 것은? *기출 | 고려사 | 고급 | 객관식 | |||
원광이 일러준 세속오계에 해당하지 않는 계율은?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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