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퀴즈박스
|
|
서기 879년 당나라에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었던 ‘이 사람’은 <토황소격문>을 써서 황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람’은 885년 신라에 돌아와 한림학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당시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며 외직(外職)을 자청했다. 하여 여러 곳의 태수를 지냈고, 이때 ‘계림황엽, 혹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계림(서라벌)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이요, 혹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신라 멸망과 고려 흥성을 예언한 것이다. 훗날 고려 현종은 이를 감사하게 여겨 ‘이 사람’에게 문창후(文昌候)라는 작위를 추서하였다. 위 내용에 해당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
분류 | 난이도 | 글쓴이 | ||||
조선시대 마패에 사용된 연호와 자호는?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고대 수필의 종류로 볼 수 없는 것은? *기출 | 조선사 | 고급 | 객관식 | |||
다음 중에서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탑은?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백성이 소유해 경작한 토지를 이르는 말은? *기출 | 고려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 ㈏의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기출 | 조선사 | 고급 | 객관식 | |||
조선 후기 척화비(斥和碑)와 맥을 같이 하는 정책은? *기출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에서 설명하는 시기는?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중 백과 사전적 저서가 아닌 것은? *기출 | 조선사 | 고급 | 객관식 | |||
다음 중 1930년대 일제강점기 모습이 아닌 것은?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왕릉의 특징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기출 | 고대사 | 고급 | 객관식 | |||
민무늬토기를 주로 사용하던 시기에 대한 설명이 아닌 것은?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일제강점기 경제 침탈에 관한 사항 중 옳지 않은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목록 다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