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퀴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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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79년 당나라에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었던 ‘이 사람’은 <토황소격문>을 써서 황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람’은 885년 신라에 돌아와 한림학사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당시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며 외직(外職)을 자청했다. 하여 여러 곳의 태수를 지냈고, 이때 ‘계림황엽, 혹령청송(鷄林黃葉 鵠嶺靑松)’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계림(서라벌)은 시들어가는 누런 잎이요, 혹령(송악)은 푸른 소나무’라는 뜻으로, 신라 멸망과 고려 흥성을 예언한 것이다. 훗날 고려 현종은 이를 감사하게 여겨 ‘이 사람’에게 문창후(文昌候)라는 작위를 추서하였다. 위 내용에 해당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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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난이도 | 글쓴이 | ||||
일제강점기 인구 44만 명이었던 도시는?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삼포왜란과 관련되지 않은 곳은? *기출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중 백제시대 유물로 맞는 것은?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조선시대에 혼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 조선사 | 중급 | 주관식 | |||
고려시대 여진족을 정벌하기 위해 편성된 부대가 아닌 것은? *기출 | 고려사 | 고급 | 객관식 | |||
발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기출 | 고려사 | 고급 | 객관식 | |||
최치원과 관계없는 사항은? *기출 | 고대사 | 고급 | 객관식 | |||
전국에 성을 많이 쌓아 ‘축성장군’으로 불린 인물은? *기출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고려시대의 관학(官學)에 해당하는 것은? *기출 | 고려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내용이 발표된 것과 관련된 사실은? *기출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조선 제27대 마지막 국왕은? | 조선사 | 중급 | OX선택 | |||
남자는 활쏘기, 여자는 베짜기를 겨룬 명절은?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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