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퀴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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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도를 따르지 않을 수는 없지만, 사방 풍습이 각기 그 토성에 따르게 되니 모두 고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예악ㆍ시서의 가르침과 군신ㆍ부자의 도리는 마땅히 중국을 본받아 비루함을 고쳐야 하겠지만 그 밖의 거마ㆍ의복 제도는 우리 풍속대로 하여 사치함과 검소함을 알맞게 할 것이며 구태여 중국과 같이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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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난이도 | 글쓴이 | ||||
임금이 신하에게 곤룡포 덮어준 일화가 있는 곳은?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다음 자료와 관련 있는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한국적 화풍이 크게 유행한 시기는? | 조선사 | 중급 | 객관식 | |||
구한말에 한국인이 세운 사립학교는?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고대에 만든 한국 고유 현악기는?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고려, 조선 때 특권신분층 자손에게 채용 특혜를 준 제도는? | 고려사 | 중급 | 객관식 | |||
고려 국왕 공민왕에 대해 바르게 설명한 것은? | 고려사 | 중급 | 객관식 | |||
일본 자본의 침투를 가져온 일제 정책은? *기출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다음 설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는?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우리나라의 남북분단 비극이 생기게 된 원인을 야기한 것은? *기출 | 근현대사 | 중급 | 객관식 | |||
일제강점기 인구 44만 명이었던 도시는? | 근현대사 | 고급 | 객관식 | |||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 생활상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기출 | 고대사 | 중급 | 객관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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