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동양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중섭과 마사꼬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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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29세
29세. 동양판 로미오와 줄리엣, 이중섭과 마사꼬 연애
 
“나는 어머니처럼 편안한 여자가 좋다.”
청소년 시절 한 친구가 이상형 여자를 묻자, 이중섭이 대답한 말이다. 이중섭은 조숙한 사춘기에 이르도록 엄마 젖을 떼지 않았는데, 그런 정서가 안식처로서의 여자를 찾게 만들었고 그런 여성을 운명적으로 만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낸 이중섭은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37년 21세 때였다. 그런데 그해 겨울 그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다리를 다쳐 1년간 학교를 쉬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자의식이 강했던 이중섭은 동기생보다 한 학년 늦는다는 사실이 싫어서 복학을 포기하고 엉뚱하게도 문화학원 미술학부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이중섭은 이 문화학원에서 운명의 여성인 야마모토 마사꼬(山本方子)를 만나게 된다. 3학년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중섭은 화실에서 나오면서 한 학년 아래의 그녀와 마주쳤다. 마사꼬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림 한 점 사고 싶어요. 선생님이 무척 칭찬하시던데요.”
“네? 부끄럽습니다. …학생 주제에 팔기는 뭣하고, 그냥 한 점 드리지요. 하지만 놀림감이 되지나 않을지 염려됩니다.”

마사꼬의 다가섬은 일종의 프로포즈였다. 왜냐하면 그림 구입보다는 중섭과 말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중섭에게도 그런 마사꼬는 매력있게 보였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스레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사꼬는 조선(朝鮮)의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고, 중섭은 마사꼬의 넓은 이해심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순식간에 소문났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에서 건너온 수재 남학생과 일본 상류층 가문의 여학생이 사귀었던 까닭이다. 마사꼬는 일본 유력 재벌의 계열사 사장 딸이었으며, 아들이 없는 집안인지라 한층 풍요한 사랑을 받고 성장한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중섭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이른바 식민지 출신이고, 마사꼬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악독한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결혼을 양쪽 집안에서 모두 반대했다. 더욱이 일본제국주의가 극에 달하고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양국인의 감정은 상당히 나빴다. 그런 상황에서 마사꼬는 당시로서는 무모한 모험을 택했다. 국가보다 사랑을 택한 것이다.

이중섭은 1945년초까지 도쿄에 머물면서 마사꼬와 교제를 계속하다가 귀국했다. 결단력이 부족하여 결혼 여부를 확정짓지 못하고 고국으로 혼자 돌아온 것이다. 마사꼬의 어머니는 일본에 산다는 조건으로 마지못해 결혼을 허락했지만 딸을 조선으로 보내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유지했으나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해 4월 연합군의 폭격이 갈수록 거세졌다. 이때 마사꼬는 오직 이중섭만을 생각하며 피난지가 아니라 시모노세키로 갔다. 한국으로 건너갈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미군 공습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시연락선을 탄 끝에 마침내 부산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마중나온 이중섭을 만났다. 훗날 마사꼬는 당시 중섭이 사들고 온 사과 맛을 항상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그해 5월 두 사람은 원산에서 한국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여러 시인과 화가들이 참석하여 축하해주었고 꿈같은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 마사꼬는 철저하게 한국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일본에서의 높은 신분을 미련없이 버리고 오직 이씨 일가를 위해 매운 반찬과 꽁보리밥을 척척 먹어치웠으며 허름한 바지를 입고 우물가에서 한국식대로 빨래를 했다. 또한 마사꼬는 이남덕이라는 한국식 이름까지 가졌다. 일제 말기에 한국인 전체가 창씨개명한 차에 일본 이름을 한국식으로 개명한 유일한 일본인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중섭을 사랑했고, 중섭 역시 그녀를 사랑했다.

두 사람의 행복은 잠깐이었다. 6․25가 터졌고 이때부터 고달픈 생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제주도로 옮겨 다녔으나 제대로 끼니를 잇지 못했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 대부분의 끼니를 게로 때운 때도 있었다. 어떻게나 많은 바닷게를 먹었던지 꿈에 게들이 나타나 발을 물더라고 이중섭은 술회했다. 그의 화폭에 등장한 게들은 모두 이때 그의 가족들이 먹은 게였다.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도 안주로 나온 게를 보면 “그것 참 잘생긴 게로군. 꼭 그려서 내가 먹은 죄를 사과해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가난을 견디다 못한 중섭은 결국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돈 한 푼 없이 처가살이할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은 한국에 남았던 것인데, 그 뒤 가족에 대한 외로움으로 발버둥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절 만나, 주위의 박해를 견뎌내고 사랑을 꽃피운 동양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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