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세. 담뱃불 같은 사랑,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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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세. 담뱃불 같은 사랑,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 연애

“악!”
제1차 대전으로 인해 세계가 어수선했던 1918년 미국 해군에서 복무하던 한 젊은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나뭇가지에 입술을 찔려 고통스러운데다 피를 많이 보았던 까닭이다. 그는 곧 치료를 받았으나 이후 평생 윗입술이 뻣뻣해지는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우연한 사고로 비정상적인 상태가 된 그의 입술은 훗날 영화배우가 됐을 때 그를 상징하는 신체적 특징이 되는 동시에 그의 인생과 사랑을 예언적으로 암시했으니…….

1899년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험프리 보가트는 전쟁이 끝난 뒤 영화판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대부분 총잡이 아니면 갱이었다. 짧게 깍은 곱슬머리와 벗겨진 이마, 응시하는 눈동자 등 권투선수같은 용모 때문에 악당역으로 캐스팅됐던 것이다. 차가운 그의 표정과 연기, 그리고 직선적 성격은 그런 역을 적합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술 안마시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만큼 지독한 술꾼이었던 보가트는 밤을 새우며 위스키를 마셔대기 일쑤였으나, 갱스터영화에서 벗어나려고 모진 애를 쓰는 가운데 <카사블랑카>로 주가를 높이는데 성공했다. 묘하게도 그 험상궂은 얼굴이 애정영화에서는 곧장 로맨티시즘을 불러일으킨 바, 배우는 연기하기 나름인 모양이다.

사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독설을 퍼부었던 보가트지만 그는 음울한 인상과는 달리 휴머니티를 간직한 배우였다. 다만 개성이 워낙 강해서 영화사와 자주 다투기로 유명했고,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아 무려 네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더구나 보가트는 여자에게 자상한 성격이면서도 한편으로 “여자는 쇠사슬로 묶어 그가 속한 가정 속에 두어야 한다”라는 보수적인 여성관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어떤 면에서 아내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특히 앙칼지고 질투심 많은 성격을 지닌 세 번째 아내 메이오 메소트와의 결혼생활은 격전 그 자체였다. 사인을 받으러오는 여성팬들이 보는 앞에서 보가트를 막무가내로 때릴 정도로 질투가 심했기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집안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 보가트는 집을 뛰쳐나와 부근의 술집을 찾았다. 그런데 손님 중 한 명이 보가트의 등에서 피가 흐른다고 말해주었고 그때서야 보가트는 등뒤에 칼이 꽂혀있음을 알고는 기겁했다. 분을 참지 못한 아내가 칼을 꽂은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부부생활은 파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으며, 두 사람은 각자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었다.

1945년에 로렌 바콜과 네 번째 결혼했는데,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인 교감으로 인해 결혼으로 이어졌다.
바콜과 보가트는 1943년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 <소유와 무소유>에서 남녀주인공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바콜은 모델 출신의 열아홉살짜리 신인 여배우였지만 보가트는 1942년 제작된 <카사블랑카>의 성공으로 우뚝 선 44세의 중견배우였다.

바콜은 훗날 손꼽히는 여배우가 됐으나 첫 출연 때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몹시 떨었다. 촬영 내내 바콜은 머리까지 떨려서 턱을 가슴까지 당기고 눈만 치떠서 보가트를 보는 포즈를 취했다. 바콜의 고백에 따르면 이 포즈는 카메라 앞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지은 어설픈 표정이었다고 하는데, 묘하게도 관객들은 그 표정에서 뇌쇄적 매력을 느끼며 ‘바콜의 시선’이라는 말로 찬사를 보냈다. 때문에 이후 그러한 표정은 바콜의 독창적 포즈로 기록됐다.

바콜은 노련한 선배 보가트로부터 연기를 배웠지만, 보가트 역시 발랄한 바콜 덕분에 모처럼 마음의 여유와 웃음을 찾았다. 당시 보가트는 세 번째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촬영이 시작된 지 3주가 지났을 때 두 사람은 분장실에서 첫 키스를 했다. 영화에서는 이미 키스를 했었지만 연정이 담긴 개인적 키스로는 처음이었다. 첫 키스 후 보가트가 “사랑한다”면서 먼저 프로포즈를 했다. 바콜은 성냥갑 뒷면에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는 것으로 보가트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보가트가 이혼절차를 마친 직후인 1945년5월21일 결혼식을 올렸다.

재미있는 것은 신혼시절 보가트는 아내에게 담배갑과 라이터를 선물했는데, 이는 다른 남자가 바콜이 담배를 물 때 불 붙여주는데 질투심을 느낀 데서 비롯된 행위였다. 보가트가 얼마나 바콜에게 빠졌는지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결혼에 불(火)과 관련된 성냥 혹은 라이터가 관련되어 있음은 자못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은 시종일관 담뱃불처럼 적당히 뜨거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여러 면에서 일반인의 예상을 뒤집었다. 음울한 독불장군 보가트에게는 따스한 감성이 없고, 이글이글한 눈매와 늘씬한 몸매를 지닌 바콜에게는 지성이 부족해서 둘의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감성과 지성을 소유한 휴머니스트였다. 다만 그것을 두 사람만이 서로 알아보았을 뿐이었다. 그러하기에 보가트는 바콜을 만난 뒤 조용하고도 평화로운 생활을 했으며, 바콜 역시 보가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업주부로서의 행복을 만끽했다. 둘은 서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런 마음씨는 사랑과 열정을 키워주었다.

1957년 홀로 된 바콜은 은막으로 복귀해 명성을 얻었다. 바콜은 프랭크 시내트라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고 제이슨 로바즈와 재혼해 12년간 결혼생활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바콜은 평생동안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는 보가트 한 사람 뿐”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보가트는 인생의 막바지에, 바콜은 첫사랑에 자신이 원하던 상대를 만났다는 시기상의 차이만 있을 뿐 서로에게 더없이 완벽한 사랑을 했던 것이다.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행복하게 보였는지, 영화광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중가수 버티 히긴스는 1981년 빌보드차트에 히트곡으로 수록된 <키 라르고>에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했다네. 바콜과 보기처럼”이라는 가사 한 대목을 넣었다. 노래말의 주인공인 ‘바콜’과 ‘보기’는 바로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을 가리킨다. 운명적인 사랑은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한편 험프리 보가트는 중절모에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시가를 입에 문 모습이 쉽게 연상되는 영화배우로서 확실한 이미지를 남겼으며, 1999년 6월 미국 CBS-TV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된 ‘미국영화협회 선정 명배우 50인’에서 남자 1위를 차지했다. 죽은 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당시 여자배우 20위에 선정된 보가트의 부인 바콜은 “나에겐 과분한 명예지만 보기(보가트의 애칭)가 최고 남우로 뽑힌 건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말함으로써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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