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세. 음악가 드뷔시, 자살을 협박받고 자살로 협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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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음악가 드뷔시, 자살을 협박받고 자살로 협박하다

클로드 드뷔시(1862~1918년)는 20세기 음악의 기초를 확립하고, 당대의 인상주의 미술과 상징주의 문학이념을 음악으로 표현한 프랑스의 대표적 작곡가이다. 그의 얼굴은 프랑스의 20프랑 지폐에 그려지기도 했다. 그만큼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표시다.

드뷔시는 잘 생긴 외모 때문인지 언제나 여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모든 여자와 행복한 사랑을 나누지는 못했고, 어떤 여자는 그를 증오하며 떠나기도 했다. 그가 걸은 사랑의 행로가 어떻기에 그럴까?

드뷔시의 아버지는 조그만 그릇 가게를 경영하면서도 음악회․연극 등을 빠짐없이 찾아다닌 문화인이었다. 그러나 생계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늘 가난하게 살았다. 좋게 보아 문화인이지 현실적으로는 대책 없이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었다.

집안 가장이 무책임하면 가족이 고통 받는 법이다. 드뷔시의 경우가 그랬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부모는 드뷔시를 그의 고모 루스탕 부인에게 맡겨 양육시켰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 칸에 살고 있었던 고모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고, 재능을 알아보는 눈도 가지고 있었다. 고모는 일찌감치 드뷔시의 음악적 재능을 간파하고 드뷔시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키는 등 갖은 사랑을 베풀었다.

이 무렵 드뷔시는 고모와 함께 짙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산책하기를 즐겼는데, 바닷가를 거닐면서 자신의 끊임없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음악의 형태로 그려낼 꿈을 꾸곤 했다.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 듯한 그의 음악적 특징은 고모와 함께 했던 해변 산책이 큰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대표적 관현악곡인 <바다>도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곡이라 할 수 있다.

드뷔시는 천성적으로 여자를 좋아했다. 어쩌면 부모에게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을 다른 여자에게서 느끼려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하여튼 드뷔시는 여자와 인연이 닿기만 하면 애정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그의 사랑은 18세 때 시작되었다. 당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피아노 레슨을 하다가 자기가 가르치는 여학생들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문제는 특정한 여성 한 명이 아니라 수시로 상대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최초의 고백도 그런 과정에서 이뤄졌다. 드뷔시는 재산 많은 폰 메크 가문의 자녀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그 집안의 상속녀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21세 때이던 1863년 여름의 어느 날, 드뷔시는 상속녀의 어머니인 폰 메크 부인에게 당돌하게 말했다.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허락이 아니라 해고였다. 드뷔시는 즉시 쫓겨났으며 비참한 심정으로 파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자극을 통해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드뷔시는 분발하여 이듬해인 1884년 로마 대상을 획득하여 한층 발전된 음악세계를 보여주었다.

유명해지자 여자들이 몰려들었고, 드뷔시는 과거의 아픔을 만회하려는 듯 여러 여인들과 관계를 가졌다. 에밀 드징갠, 블랑쉬 바스니에 등의 여인이 드뷔시 곁에 있었으며 드뷔시는 지극히 탐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던 1890년의 어느 날 날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가브리엘 뒤퐁이라는 여인이 나타나 드뷔시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가브리엘 역시 한눈에 드뷔시에게 빠졌고, 자연스레 두 사람은 같이 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불꽃 사랑이었다.

어느 귀족의 정부였던 가브리엘은 호화로운 생활을 기꺼이 포기하고 오직 드뷔시만을 위하여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갔다. 어떤 날은 빵 한 조각이 없어 배를 움켜잡았지만 한 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드뷔시를 위해 주었다.

드뷔시는 그런 가브리엘을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하지만 바람둥이의 바람은 원초적으로 그치지 않는 것인지, 드뷔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눈을 팔았다. 두세 차례 딴 여자와 어울렸고, 1894년에는 돈 많은 테레즈 로제라는 성악가와 약혼까지 했다. 그때까지 참고 또 참았던 가브리엘은 이번에는 애원 반, 협박 반으로 드뷔시에게 매달렸다.
“만약 당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나는 죽어버릴 거예요.”

가브리엘은 자살해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드뷔시의 마음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출세 욕망에 불탄 드뷔시의 마음은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크게 상처받은 가브리엘은 드뷔시에게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않고, 증오하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복수의 의미로 다른 귀족을 만나 정부로서 편안한 삶을 누렸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가브리엘의 증오 때문인지는 몰라도 드뷔시는 약혼녀로부터 한 달 만에 파혼을 선언당하고 말았다. 드뷔시 입장에서 황당한 일이었지만 자신도 변심한 과거가 있는 만큼 약혼녀의 변심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드뷔시는 주저앉지 않았다. 계속 다른 여자를 만났으며, 1898년 봄 파리의 여성복 전문점에서 모델 겸 양재사 일을 하고 있던 릴리 텍시어를 보자마자 한눈에 넋을 잃었다. 정념에 불타오른 드뷔시는 당장 릴리에게 구혼을 했다.
“릴리, 나와 결혼합시다.”

그러나 릴리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미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뷔시는 포기하지 않고 무려 1년 6개월이나 끈질기게 사랑을 호소했다. 그래도 릴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인내심이 극에 달한 드뷔시는 1899년에 이르러 비장한 결심을 하고는 그녀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결혼을 승낙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소.”

자신이 가브리엘에게 당한 수법을 그대로 써먹은 것이다. 그 내용을 알리 없는 릴리는 드뷔시의 강경한 선언에 당황하여 마침내 드뷔시의 구애를 받아들였고, 그해 10월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릴리로부터 결혼 승낙을 얻기는 했지만, 드뷔시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아서 결혼식 자체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때까지 한 푼 가진 것 없이 지내던 드뷔시는 결혼식 하객들의 식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 피아노 레슨을 해야 했고, 그들의 신혼여행은 파리의 공원 식물원에서 지낸 오후 한나절이 전부였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릴리에 대한 드뷔시의 애정이 금방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1903년 드뷔시의 태도에 분노한 릴리는 자살하겠다고 협박하여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으나 소용없었다. 릴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권총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1904년 드뷔시는 릴리와 이혼하고 엠마 바르다크와 재혼했다. 이후 드뷔시는 죽을 때까지 엠마와 살았다. 바람둥이의 정처 없는 사랑은 42세의 중년이 되어서야 한 여자에게 멈췄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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